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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도시 아고라 원주민회, 강원 원주 지정면에서 '알쓸원잡'... '공동체 정의' 상징하는 안창리 욕바위▲ 욕바위 사진. ⓒ 원주투데이사람들이 이동하며 무심코 지나쳤던 강원도 원주 '욕바위'가 소통을 주제로 다시금 조명을 받았다. 문화도시 아고라 원주민회 포용성장분과위원회(위원장 김주원)는 지난 12일 '평해대로와 욕바위에 얽힌 소통의 길'을 주제로 알쓸원잡(알아야 쓸데있는 원주의 잡학사전) 행사를 열었다.이들은 지정면 안창리 일원에 모여 ▲욕바위 ▲을미의병비 ▲신도비 ▲의민사 ▲흥법사지 등 역사의 현장을 둘러보고, 지정면사무소 회의실로 자리를 옮겨 다양한 주제로 발제·토론했다. 특히 '욕바위'와 '평해대로'를 주요 소재로 정해, 지역의 정체성을 탐구하는 시간을 가졌다.길은 이동하기 위한 수단을 넘어, 사상과 문화가 함께 흐르는 소통의 공간이다. 1770년 제작된 신경준 '도로고'를 기준으로, 당시 조선의 도로는 ▲의주로 ▲경흥로 ▲평해로 ▲영남로 ▲삼남로 ▲강화로 등 크게 6대로가 있었다. 이중 '평해로'는 한양에서 출발해 원주와 강릉을 지나 평해(울진)까지 이어지는 도로로, '관동대로'라고도 불렸다. 공무 수행자와 불교 승려, 선비 등 다양한 인물이 이 길을 지나며 지역과 지역을 잇고, 소통해왔다. 특히 김시습과 김세렴은 이 길을 따라 원주 치악산을 노래했고, 송강 정철은 가사문학 <관동별곡>을 남겼다.또한, 안창리 덕가산 서쪽 절벽을 이루는 바위인 '욕바위'도 '전설'을 지녔으며, 입에서 입으로 이야기가 전해지고 있다.전해지는 이야기에 따르면 옛날 안창리엔 성격이 직설적이고 괄괄한 선비가 살았다. 서당 훈장도 하며 지낸 그는, 속에 쌓인 울분을 욕설로 풀어야만 직성이 풀리곤 했다. 특히, 새로 부임한 원주 목사에 대한 불만이 많았는데, 직접 표현하지 못해 속병이 나버렸다.그러던 중 원님이 한양으로 영전돼 이곳을 지나간다는 소식을 듣고, 원님이 지나가는 길 옆에 자리한 높은 바위 벼랑에 올라가 차마 입에 담기 어려운 욕을 실컷 퍼부었다. 원님은 화가 났지만, 가는 길이 급해 지나갈 수밖에 없었다.이후 동네 사람들은 해당 바위를 '욕바위'라 부르며, 이야기를 전해오고 있다. 단순한 바위가 아닌, 피지배층과 지배층 간의 충돌과 화해, 공동체의 문화도시 아고라 원주민회, 강원 원주 지정면에서 '알쓸원잡'... '공동체 정의' 상징하는 안창리 욕바위▲ 욕바위 사진. ⓒ 원주투데이사람들이 이동하며 무심코 지나쳤던 강원도 원주 '욕바위'가 소통을 주제로 다시금 조명을 받았다. 문화도시 아고라 원주민회 포용성장분과위원회(위원장 김주원)는 지난 12일 '평해대로와 욕바위에 얽힌 소통의 길'을 주제로 알쓸원잡(알아야 쓸데있는 원주의 잡학사전) 행사를 열었다.이들은 지정면 안창리 일원에 모여 ▲욕바위 ▲을미의병비 ▲신도비 ▲의민사 ▲흥법사지 등 역사의 현장을 둘러보고, 지정면사무소 회의실로 자리를 옮겨 다양한 주제로 발제·토론했다. 특히 '욕바위'와 '평해대로'를 주요 소재로 정해, 지역의 정체성을 탐구하는 시간을 가졌다.길은 이동하기 위한 수단을 넘어, 사상과 문화가 함께 흐르는 소통의 공간이다. 1770년 제작된 신경준 '도로고'를 기준으로, 당시 조선의 도로는 ▲의주로 ▲경흥로 ▲평해로 ▲영남로 ▲삼남로 ▲강화로 등 크게 6대로가 있었다. 이중 '평해로'는 한양에서 출발해 원주와 강릉을 지나 평해(울진)까지 이어지는 도로로, '관동대로'라고도 불렸다. 공무 수행자와 불교 승려, 선비 등 다양한 인물이 이 길을 지나며 지역과 지역을 잇고, 소통해왔다. 특히 김시습과 김세렴은 이 길을 따라 원주 치악산을 노래했고, 송강 정철은 가사문학 <관동별곡>을 남겼다.또한, 안창리 덕가산 서쪽 절벽을 이루는 바위인 '욕바위'도 '전설'을 지녔으며, 입에서 입으로 이야기가 전해지고 있다.전해지는 이야기에 따르면 옛날 안창리엔 성격이 직설적이고 괄괄한 선비가 살았다. 서당 훈장도 하며 지낸 그는, 속에 쌓인 울분을 욕설로 풀어야만 직성이 풀리곤 했다. 특히, 새로 부임한 원주 목사에 대한 불만이 많았는데, 직접 표현하지 못해 속병이 나버렸다.그러던 중 원님이 한양으로 영전돼 이곳을 지나간다는 소식을 듣고, 원님이 지나가는 길 옆에 자리한 높은 바위 벼랑에 올라가 차마 입에 담기 어려운 욕을 실컷 퍼부었다. 원님은 화가 났지만, 가는 길이 급해 지나갈 수밖에 없었다.이후 동네 사람들은 해당 바위를 '욕바위'라 부르며, 이야기를 전해오고 있다. 단순한 바위가 아닌, 피지배층과 지배층 간의 충돌과 화해, 공동체의 정의 등을 상징하는 '민초들의 바위'인 셈이다.발제자로 나선 정태진 포용성장분과위원회 위원은 "오늘날 우리가 서 있는 이 땅, 이 길 위로 과거의 누군가가 말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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